[스크랩] 골프공의 변천사를 한눈에....
지금의 골프볼은 10억분의 1수준을 요하는 '극미세 가공' 과학 기술인 나노기술이 접목되고 기체역학 이론을 토대로 하는 최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이런 골프공이 되기까지의 골프공의 변천사를 알아본다
1457년,영국.나무공
우든 미사일은 너도밤나무,감나무등으로 만들어진 골프볼로 추정되며 가장 최초의 볼로 알려져 있다.
1600년대,페더리 볼(Feathery ball)
가죽으로 볼모양을 만든 다음 물에 축축히 적신 상태에서 역시 물에 적신 거위털을 가득채워서만들었는데, 가죽을 여러조각으로 자른 다음 명주실로 볼모양을 만든후 꿰맨 자국이 안쪽으로 들어가도록뒤집어 아직 꿰메지지 않은 작은 구멍으로 적신 거위의 털을최대한 단단히 채워 마지막으로 구멍을 막은후 말린다. 이렇게 말린 가죽볼은 가죽의 수죽과 깃털의 팽창으로 아주 단단해진다. 이를다시 약간의기름을 바른 다음, 표면에 흰색을 도색함으로써 모든 공정은 끝이난다.이공정은 모두 수작업이었기때문에 기술자라고해도 하루에 4-5개를 만드는데 불과했으며 매우 비쌌다. 이볼은 약 180-220 야드정도 드라이버 비거리를 날렸다고 한다. 1836년세인트 앤드류 대학 프랑스인 교수인 샘메시욱스의 361야드가 최고 기록이지만, 당시 땅이 조금 얼어있었고, 뒷바람도 불었다고 한다.
물에 젖으면 사용할수없었고 모양이 일그러지기 일쑤였으며, 아무리 견고하게 제작해도 2라운드를 넘기기가 힘들었던 것이 단점. 그럼에도 1845년 구타페르차볼이 등장하기전 까지는 유일한 골프공이었다. 직경은 43-46mm, 무게는 43g
1845년,구타페르차볼(Gutta-Percha)
‘거티’(gutty 혹은 guttie)라 불린 이 공은 1845년 세인트앤드류 대학(St. Andrews University)의 교수이자 열광적 골퍼였던 ‘로버트 아담스 피터슨(Rev. Dr. Robert Adams Paterson)’에 의해 고안됐다.
피터슨 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로 배달된 힌두교의 신(神)인 ‘비쉬나(Vishna)’의 대리석 조각상이 운반 도중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액(樹液)인 ‘구타페르카’로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이 수액으로 골프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거티'의 비거리는 '깃털 공'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 평균 190야드를 날릴 수 있었고, 세계 최초의 300야드 이상의 비거리도 ‘거티’의 등장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볼은 고온에서 공정후 냉각시켰을 때 다시 단단해져 쉽게 찢어지거나 깨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물에 젖어도 구질에 변화가 없었지만 비거리는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구타페르차볼은 금속물질, 가죽, 코르크등을 약체 접착제와 함께 넣어 구티(Guttie) 볼로 발전했으며, 볼 역사에서 대전환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바로 몰드(Mould:거푸집)와 딤플(Dimple)의 발견이다. 몰드를사용해 볼을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일정한 규격과 정교한 표면처리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또 이 제조 과정에서 표면이 약간 거칠게 되었는데 골퍼들은 이볼을 사용하다 오히려 흠이 생길수록 비거리가 향상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898년, 러버코어 볼(Rubber Core Ball,일명 하스켈 공(Haskel))
‘거티’의 시대는 19세기 말까지 이어지다가 1898년 역시 열광적 골퍼였던 ‘코번 하스켈(Coburn Haskell)’이 '거티'를 업그레이드 시킨 이른바 ‘하스켈(Haskell)공’을 고안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만났다.
'하스켈'은 내부 중심부(핵, 코어)를 고무로 채우고 외부를 얇은 고무로 둘러싼 형태로 현재의 골프공과 거의 흡사한 형태였다. ‘하스켈(Haskell)’은 '거티'에 비해 탄성이 더욱 좋았고 비거리는 25야드 이상 늘었다. 특히, 페어웨이에서도 잘 튀어 올랐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바운딩 빌리스(Bounding Billies)’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이후 발라타 고무소재를 발견하면서 커버는 발라타로 바뀌었다.
이 볼은 중앙의 액체가 무게의 중심을 잡고 고무실의 탄력으로 더 멀리 날아감은 물론 방향조절이
가능했으며 무엇보다도 탄탄한 커버소재로 타구감이 좋았다.
스핀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키며 현대 골프볼의 탄생을 알렸다.
1901년 영국 출신의 ‘존 타일러(John H. Tyler)’가 하스켈(Haskell)공으로 그의 연속 2번째 U.S. 아마추어 챔피언이 됐고, 다음 해에 ‘알렉산더 허드(Alexander Herd)’가 역시 ‘하스켈’로 브리티시 오픈을 우승하면서 ‘하스켈’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현재 모양의 딤플이 생겨난 것과 현대 골프공 설계의 원조가 되는 인조고무공이 개발된 것은 거의 때를 같이 한다.인조 고무의 핵 부분에 합성수지를 코팅하고 그물망 모양의 딤플로 현대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모양새를 갖춘다.
탑 플라이트(Top-Flite)
가장 극적인 발전은 클리블랜드의 한 골퍼가 굿리치 타이어(Goodrich Tire Comapny)와 투피스 공을 공동 개발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탑 플라이트(Top-Flite)의 ‘투피스(Two-piece)’ 공이다. 가열, 가소성의 코어(Core)를 단단한 합성수지로 에워싼 이 공은 1968년 개발됐고, 내구성과 탄성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골프공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곧 뒤이어 Wiliam Taylor라 불리는 영국 엔지니어에 의해서 그동안 쓰이던 패턴을 뒤집어놓은, 다시말해 현재의 딤플 모양의 원조를 가진 골프공이 디자인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들은 곧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이후 골프공의 발전이 큰 가닥을 잡자, 골프공 회사마다 전부 무게가 다르고 크기가 다른 점이 문제가 되어서 1931년 미국 골프협회는 골프 룰에 대한 규정을 삽입하게 되었다.
1931년에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직경 42.67mm, 중량 45.93g 으로 규제했고, 1942년에는 250피트/sec(시속 300km)로 타구속도를 규제하게 되었다.
2006년,이제는 골프볼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졌다.
2010년. 42.67mm, 108mm의 작은 골프공이 이제는 5피스로 제작되는 시대이다
2010년. 4.2cm,108mm의 작은 골프공이 이제는 5피스로 제작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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