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산객 2011. 11. 2. 07:55

 

정훈희의 '세시봉과 나' - "당대 히트 팝송 함께 듀엣… 트윈폴리오가 반주 해주기도"

정훈희(60). 1960년대 가요계에 '팝의 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다. 67년 만 16세 나이에 데뷔곡 '안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이봉조, 박춘석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콤비를 이뤄 7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든 '디바'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해 말부터 복고 포크 열풍을 일으켜 온 '세시봉 친구들, 두 번째 이야기'의 새 멤버로 팬들과 만난다. 정훈희는 지난달 31일 인터뷰에서 "세시봉과 40여년 만에 해후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세시봉과의 인연은.

"세시봉이 인기를 끌던 1967~68년 나는 기성가수였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등이 아마추어였던 것과 달랐다. 당시 세시봉은 TV나 라디오 공개프로그램의 녹화·녹음장으로 자주 이용됐고, 나는 그 무대에 섰다. 세시봉 멤버들과 친해진 건 세시봉 다음으로 인기를 끌었던 명동의 생맥주집 오비스캐빈에서 공연하면서부터다. 그 무대에 같이 섰던 조영남, 트윈폴리오 등과 듀엣을 자주 불렀고 어떤 때는 트윈폴리오가 내 노래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주로 어떤 음악을 했나.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선 패티 페이지, 코니 프란시스, 비틀스의 노래까지 당대 히트 팝송을 다 불렀다. 이후 TV 쇼에선 거의 매주 (조)영남 형과 마이크를 잡았다. 1969년 남진 오빠의 제대 후 첫 리사이틀 무대, 이듬해 나훈아 오빠 리사이틀에서 듀엣을 했고, (송)창식이형 솔로 공연 때도 함께 노래했다. 정말 수많은 남자가 나를 거쳤다.(웃음)"

―세시봉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세시봉의 주 고객들은 모두 내 위의 오빠·언니뻘 되는 20대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6·25전쟁 이후 피폐하던 시절 청소년기를 보내며 물질적 빈곤을 겪으면서도 외국 문물을 동경하던 세대다. 이들에게 세시봉으로 상징되는 음악다방은 휴식과 소통의 공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세련되고 이국적인 문화를 접하고, 더불어 데이트도 할 수 있었으니까."

―40여년이 흐른 지금 세시봉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세시봉 세대들이 어떻게 살아왔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곧바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치적 격변의 연속을 겪으며 30~40대를 보냈다. 불타는 정열을 해소할 곳 없이 삶에 치여 여기까지 왔다. 세시봉에 앞서 7080신드롬이 일어났지만, 이는 40~50대들만을 위한 잔치였다. 그렇게 풀어야 할 때를 계속 놓치다가 6학년(60대)을 넘어 7학년(70대)이 될 무렵에야 비로소 뒤늦게 때를 만난 거다."

‘세시봉 친구들’에 합류한 가수 정훈희가 지난달 31일 인터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래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연을 하고싶다”고 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어떤 무대를 보여줄 것인가.

"나보다 몇 살 위 언니·오빠들을 위한 무대다. '꽃밭에서'와 '무인도' 등 데뷔 초기 히트곡들을 부른다. 송창식과는 듀엣으로, 송창식·김세환과 트리오로 무대를 꾸밀 것이다. 당시에 두루두루 유행했던 가요와 팝 메들리, 샹송, 칸초네도 부를 예정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래들과, 혹은 한 가족 안에서 세대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콘서트로 꾸미고 싶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등으로 70~80년대 노래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나가수 후배들은 원래부터 실력 있는 가수들이었는데 늦게나마 인정받게 돼 흐뭇하다. 아이돌 가수들이 나오는 불후의 명곡도 즐겨본다. 맨날 춤추고 자기 파트 몇 소절 해서 노래에 목말랐던 애들을 그렇게 풀어놓으니 얼마나 잘 부르나. 곧 내 노래 특집을 한다고 해 기대가 크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협연을 자주 한다.

"'꽃밭에서' 한 곡으로만 해도 소녀시대 제시카, 린, 알렉스랑 함께 불러봤다. 후배들과 함께했을 때 내가 앞서지 않고 그들을 받쳐주는 스타일이어서 편안해하는 것 같다. 후배들에겐 '가수는 라이브'라고 줄곧 충고한다. 데뷔 초기 비(정지훈)가 열린음악회에서 춤추랴 노래하랴 헉헉대기에 '너 성공하려면 계속 그렇게 해. 잘하고 있어'라고 박수치고 격려해줬다. 봐라. 지금 월드스타가 되지 않았나.(웃음)"

―정훈희의 노래 인생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75년 공연장 대기실에서 극성 스토커의 공격을 받아 코가 찢어진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다. 자칫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수 있었다. 노래가 곧 삶이었다. 2009년 화관문화훈장 받을 때 그 삶을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앞으로도 삶이 곧 노래인 인생을 살아가겠지." 공연문의 (02)517-0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