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신문·사진 =>스크랩/큰바위세상구경

[스크랩] 하이델베르크의 낮 10. 하이델베르크성

하이델베르크의 낮 10. 하이델베르크성

 

하이델베르크성에 대해서는 1988년에 처음 이곳에 갔을 때의 감상을 2003년에 정리해서 

당시에 내 블로그와 여러 카페에 올렸던 글 중  글이 있어서 그것을 약간의 수정 후에 옮긴다.

 

사진도 여러 번에 걸쳐서 이곳에서 찍었던 사진을 올려본다.

 

==================================================================

하이델베르크 성과 세계최대의 와인통

 

으로 올라가는 돌로 포장된 경사로는 제법 가팔랐으나

그런 대로 운동 겸 산보 삼아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2005 겨울)

 

성 위의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래에 보이는 성령교회 및 제수이트교회의 첨탑이며 사이사이에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의 조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은

옛 것들을 잘 보존한 자손들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감탄을 절로 자아낼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 건너 편의 언덕을 뒤로한 주택들이 주는 그 조화의 아름다움이란….

그리고 조금 상류 쪽에 위치한 수문도 전혀 낯설지 않은 어울림을 주고 있었다.


성의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이 성의 본관격인 프리이드리히관,

 

(프리이드리히관 1988년) 

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 가는 쪽으로 같이 따라 들어 갔다.

들어가 보니 그 건물의 지하였는데 넓지막한 홀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들어갔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거기에는 간단히 맥주와 와인을 판매하는 판매대와 테이블들이 몇 개 있었고

사람들이 앉아서 간단하게 그것들을 마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큰 와인-그 때는 와인통인지는 몰랐었다.-통이 하나 있었다.

높이가 내 키 보다도 더 큰….

 

 

(2003년의 사진 - 작은 술통)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통의 이름이 작은 술통(Kleines Fass)이란다.

작은 술통을 보고 놀란 순간 난 다시 깜짝 놀랐다.

거기에서 다시 지하로 한 층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 지하실 전체와

크기가 같은 검은 색의 큰 통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마치 거인국 브로브딩나그에 온 걸리버와 같은 심정으로 그 통을 바라 보았다.

거의 삼층 높이는 됨직한 큰 통- 저것이 술통이라니….

어쨌든 술통 외벽으로 놓여진 계단을 통해서 한 바퀴 돌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세계최대의 술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

-큰 술통(Grosses Fass)이었다.

그 통 위의 네모난 스테이지 모양의 마루가 댄스 플로어란다.

 

( 세계최대의 술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 - 큰 술통(Grosses Fass)- 2003년 사진)

사진 아래 쪽의 사람과 비교를 해 보시라...)

 

 

(댄스 플로어 - 2003년 사진)

 

물경 22만 리터의 와인이 들어 간다고 하니….

사진도 하나 찍었었는데 플래시가 약했던 탓인지 새까맣게 나와서 유감이었다.

그 앞의 테이블에서 와인 한 잔을 시음한 것은 4년 뒤인 1992년의 일이었다.

와인 한 잔을 하고 나면 그 와인 잔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그 와인 잔은 지금도 집에 보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로 하이델베르크에 간 2001년 3월에는

와인 판매대와 테이블들이 치워져 있었고 와인 판매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아이스 바 하나 사먹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셋. 성의 이모저모

 

프리이드리히관에서 나와서 안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마당은 동서양의 관광객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혼자 돌아 다니는 관광객은 거의 없는 듯했다.

어쨌든 동, 서, 남,북을 번갈아가며 건물 - 성한 것도 있고 벽체만 남고 파괴된 것도 있었다.-

사진을 찍고 건축물들의 모습들을 눈에 넣기 바빴다.


붉은 색을 띈 건물의 독특한 색조, 그리고 건물벽의 부조들,

화려한 르네상스식의 장식들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파괴되어 벽만 남은 동쪽의 오트하인리히관은

이곳과 아무 관계도 없는 나의 마음을 괜시리 아프게 했다.

이 성이 파괴된 것이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군대와의

전쟁 때라고 했는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 벽체만 남은 오토하인리히관 2005년)


그래도 이곳의 주 건축재료가 석재이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은 벽체, 돌로 된 구조물들이 그래도 본래의 모습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으며

옛날의 그 위용을 그대로 드러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전쟁을 치르더라도 목조건물이 전부였던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전란이나 화재의 피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건물은 없었으니까….
몽고의 침입에 모두 그슬러 먹고 남은 것들은 고려말 홍건적의 난 때 또  파괴되고

그나마 남은 것과 재건한 것도 임진왜란 때 왜인들에게 모두 불살라지고 하는 식이어서

무슨무슨 건물터라고 하면 으레 주춧돌 몇 개만 덩그렇게 남고 기껏해야 돌계단 몇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당연지사로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석조로 된 석굴암이나 불국사의 계단(청운 백운교, 연화 칠보교),

탑들이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돈을 얼마인가 더 주어야 들어 갈 수 있는 성의 박물관 관람은 생략했다.

이곳은 그 후 2001년에 갔을 때 들어가서 성의 역사에 관한 여러 유물을 구경하였다.

그 때의 기쁨중의 하나가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약 15,000원에 독일 거의 전역의

성과 궁궐, 수도원 등을 을 소개해놓은 책자를 산 것인데 약 250페이지 이상 되는,

사진과 설명이 되어 있는 화보집이었다.


성의 건물들의 구조는 앞에 설명이 되어 있으니까 부연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안마당에서 성문탑(Tortrum)과 다리를 거쳐서 후면에 있는 정원으로 나왔다.


로마의 개선문을 닮은 엘리자베스문은 그 문 혼자서 외롭게 서있다.

그런데 이 문은 프리이드리히 5세가 그의 영국출신의 왕비인 엘리자베스의

생일 선물로 지은 것인데 왕비를 놀라게 하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엘리자베스 문 2005년)

 

  (엘리자베스 문 2010년)

 

문을 지나서 성벽쪽으로 있는 마당이 바로 Artillery Garden

(독일어로는 찾지를 못해서 영어로 써 놓음: ‘대포정원’ 정도로 보면 될 듯…)인데

거기에서 내려다 보는 하이델베르크의 경치도 정말 아름다운 것이었다.

특히 반원형으로 돌출된 Rondel에서의 시내 풍경도 역시 일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 중의 하나가 마크 트웨인이 1878년에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했다는 것인데

그가 이곳에서 하이델베르크를 내려다 보고 남긴 글 하나….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제까지 이 곳만큼 고요하고 만족스러운 매력을 가진 곳을 본 적이 없다.”

("I have never enjoyed a view which had such a serene and satisfying charm

about it as this one gives." ).


동쪽으로 펼쳐진 성의 정원을 거닐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떠 올랐다.


‘고려 때 유명한 문장가이자 한림학사였던 김 황원이

평양 부벽루에 올라가 대동강의 풍경을 감상하던 중

예로부터 그 때까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써 붙인 모든 시를 보고

그 시의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서판을 거두어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종일 기둥에 기대어 애써 읊었으나,


長城一面溶溶水 장성일면용용수 긴 성 한쪽으로 강물은 굽이쳐 흐르고,
大野東頭點點山 대야동두점점산 너른 들 동쪽으로 산들은 점 찍은 듯 우뚝우뚝,

 

그 다음을 잇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있다가

통곡을 하고 내려와서 절필을 했다던가….’

 

정원에서 보는 파괴된 화약의 탑-이 탑의 파괴의 원인이 벼락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의 모습은 파괴된 탑 사이사이를 헤집고 올라오는 잡초를 통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화약탑 1988) 

 

 

성의 이곳 저곳에서(1988,1992)


정원은 아름드리 나무가 드문드문 있고 아주 보기 좋은 잔디로 덮여 있었다.
정원 남동쪽 끝에 있는 조각 분수가 눈길을 끌었는데

그 당시에는 나의 과문한 탓으로 물과 함께 있는 반라의 근육질의 남자의 조각상이면

무조건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로마신화의 넵튠)으로 생각을 했었다.

이것도 나중에 알고 보니까 라인강의 아버지(Vater des Rhines) 상이라고 한다.

 

 

(라인강의 아버지상 1988)

 

(북동쪽 끝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풍경 1988 )


정원의 북동쪽 끝에 있는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또한

앞에 이야기한 여러가지 아름다움을 골고루 지닌 풍경을 하고 있었다.
성의 뒤로 멀리 보이는 시내, 교회의 첨탑들, 오른 쪽으로 펼쳐진 넥카강,

바로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수문, 옛다리, 강 건너 편의 오밀조밀한 아름다운 주택들,

특히 서쪽으로 보이는 벽체만 남아있는 오트하인리히관과 종탑,

화약의 탑의 파괴되지 않은 뒷부분이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 모습을

아름드리 나무가 무성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보는 멋진 풍경이란….

(오트하인리히관과 종탑 1988)


이 사진들은 앞에서 보여 드린 바 있는데 정말 사진이라는 매개물이 자연의 풍경을

얼마나 제한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 눈에 들어 오는 성과 시가지와 넥카강과 옛다리의 어우러진 모습,

그리고 강 맞은 편의 멋진 주택들의 풍경들을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성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뒤돌아보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 발견한 것이 오트하인리히관과 북동쪽 테라스의 사이의 계곡길이었는데

(계곡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물이 흐르는 그런 계곡은 아니다.

다만 그 외의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 말을 썼을 뿐이다.)

여기를 내려 오기 전에 위치한 자그마한 담장과 옆의 풀밭,

그리고 아래에서 올려다 본 테라스의 아치 구조물들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고 있었다.

 

 (위에서 본 자그마한 담장 1988)

 

 2005

 

 2010

 

(담장위의 거미소녀-스파이더 걸 spider girls)

 

 (올려다 본 북동쪽 끝의 테라스 1988)


아무도 택하지 않는 그 길을 따라서 혼자 내려오면서 뒤돌아 보이는 성의 장엄함….

날이 맑았으면 또 얼마나 더 멋있는 풍경을 제공했을 것인가?


초록색 사이에 박혀 있는 붉은 벽돌색 사암의 성, 그 색깔의 대비가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 

 

(위의 글이 내가 본 하이델베르크 성의 모습이고

아래의 글은 하이델베르크성의 개략적인 연혁과 객관적인 사실의 설명이라고 보면 될 것같다.)

 

하이델베르크 성에 대하여...

 

사실 하이델베르크를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붉은 사암 건물은

하이델베르크 시가지를 압도하고 있다.

이 성은 처음 건축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차례의 파괴와 개축,

증축을 거쳤기 때문에 건축양식도 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1225년 팔츠백(伯) 오토 비텔스바흐(Wittelsbacher die Herren der Pfalz )가 축조하였다.

당시의 성은 현재의 성보다 더 높은 산허리에 있었는데,

1537년 낙뢰(落雷)로 파괴되었다.

 1622년 프리드리히 5세 때 신,구교의 30년 종교전쟁으로 다시 파괴된 후

그의 동생인 '카알 루트비히(Karl Ludwig)'에 의해 다시 재건축되었으나

1688년,1693년 상속권 분쟁으로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면서 다시 파괴됐다.

그 후 1756년 '칼 데오도르(Karl Theodore)' 황제때 이 성을 다시 복원하려고 했으나,

공사 도중 번개에 의한 화재로 계획은 취소됐다.
그래서 지금 성이 많은 부분이 파괴된 채 남아 있는 것이다.

 

 

(성벽- 파괴된 것이 보인다. 2010년)


또한 이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북쪽의 네카강을 면한 본관격인 건물이 프리이드리히관(Friedrichsbau )이다.

이 건물의 지하실에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술통이 있다.

 

 

프리이드리히관


프리이드리히관에서 동쪽으로 연결된 것이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된

거울의 방(Glaserner-Saal-Bau)이고 다시 꺾어져서 남쪽으로 뻗은 건물이

오트하인리히관(Ott-heinrichsbau)과 루트비히관(Ludwigsbau)이다.

 

(정원의 동쪽 끝에서 본 오트하인리히관과 종탑 2010)


그 맞은편에 프리이드리히관과 일자로 연결된 것이 영국관(Englischerbau),

기역자로 꺾인 건물이 여성관(Frauenzimmerbau),

그리고 도서관, 루프레히트관(Ruprechtsbau)들이다.


그 외에도 약제사의 탑, 시계탑, 파괴된 채로 있는 화약의 탑(Krautturm),

게스프렝터 탑과 같은 봉건시대에 건축된 건축물들이 있다.

 
성의 뒤편은 정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하이델베르크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

 하이델베르크를 여러 번 왔으나 짧게 짧게 들른 것이라,

그리고 디카 나오기 전에 들렀을 때의 사진은 별로 남은 것이 없어서 유감이다.

하이델베르크의 남은 부분은 언젠가 재정리를 하기로 하고 이번의 시리즈는

야경을 포함하여 11회로 끝내야 할 것 같다...

 

다음 블로그 '옛정자 그늘.'

http://blog.daum.net/oldpavilion

 

파빌리언

스크랩만 허용합니다.

 

 

 

출처 : 옛정자 그늘.
글쓴이 : 파빌리언 원글보기
메모 : ** 오래전 가보았던 독일 볼수록 멋있다